게임평

[게임 리뷰] 클레르 옵스퀴르 : 33원정대 - 찬란한 여정 속의 미묘한 균열

maedyoung 2026. 4. 3. 03:00

본 글은 클레르 옵스퀴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2025년 GOTY를 거머쥔 <클레르 옵스퀴르>. 출시 초기 할인 때부터 구매를 고민했으나, 당시 플레이 하던<스텔라 블레이드>, <엘든 링: 황금 나무의 그림자> 등 쟁쟁한 게임들에 밀려 이제야 패드를 잡게 되었다. 언젠가는 꼭 플레이할 작품이라 생각했기에, 출시 후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스포일러를 피하려 관련 영상이나 방송을 일절 접하지 않은 채 '순수한' 상태로 여정을 시작했다.


화려한 시작, 그리고 영혼을 울리는 OST

이 게임의 서사는 '고마주'라 불리는 비석에 적힌 나이의 사람들이 소멸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 원정대가 그 원흉인 '페인트리스'를 처치하러 떠나는 과정을 그린다. 오프닝 연출은 가히 압도적이다. 주인공 구스타브의 옛 연인 소피가 고마주로 인해 소멸하는 장면을 통해 유저에게 명확한 동기를 부여하고,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또한, 모든 전투와 시퀀스에서 흐르는 음악은 이 게임이 왜 최우수 OST 상을 받았는지 증명한다. 개인적으로도 역대 플레이한 게임 중 최고라 단언하고 싶다. 특히 후반부 르누아르 전의 BGM인 **'Une vie à t'aimer'**는 이 게임의 하이라이트다. 컷신과 맞물려 절정으로 치닫는 선율, 특히 체력을 절반 이하로 깎았을 때 2페이즈 진입과 함께 페이드 아웃되는 연출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 연출이 너무나 강렬했던 나머지, 오히려 최종장인 페인트리스와의 보스전이 연출적으로 더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변주가 가져온 서사의 명암]

이 부분은 <클레르 옵스퀴르>의 핵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토리는 크게 1~3막으로 구성된다. 2막까지는 세상을 구하기 위한 원정대의 숭고한 여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몰입감이 상당하다. 하지만 페인트리스를 물리친 직후 드러나는 진실—이 세계가 사실 '그려진 세계'이며,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마엘'의 가족이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라는 설정—은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다.

거대한 세계의 구원이라는 주제가 갑자기 '가족사'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갈등으로 축소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3막 초반에 이 방대한 진실을 한꺼번에 쏟아내듯 설명하다 보니, 유저 입장에서는 정보의 과부하로 인해 서사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우려가 있다.

또한 3막이 자율 탐험 형식으로 전환되면서 자유도는 확보했지만, 서사의 긴장감 측면에서는 독이 되기도 한다. 곧장 엔딩으로 직행할 경우 전체적인 빌드업이 무너지며 '용두사미'처럼 느껴질 여지가 크다. 1막의 중심이었던 구스타브의 갑작스러운 죽음 역시 당혹스러웠는데, 이 부분은 추후 별도의 글로 상세히 다뤄보려 한다. 총평하자면, 캐릭터들의 서사를 쌓아가는 과정은 훌륭했으나 이를 마지막에 폭발시키기보다 '비트는' 방식을 선택하면서 유저 간의 평가가 나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불호 쪽에 가까우나, 스토리를 곱씹어보며 생각해 보니 호에 가까워 진거 같다.


능동적인 턴제 시스템: 강요 없는 전략의 재미

전투 면에서는 턴제 게임 특유의 수동성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적의 공격을 타이밍에 맞춰 패링하고 카운터를 날리는 시스템은, 상대를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지루함을 없애고 전투 내내 높은 긴장감을 유지하게 한다.

 

전략적 깊이 또한 훌륭하다. 캐릭터 조합과 공격 순서, 그리고 '팍토스' 시스템을 통해 피지컬과 뇌지컬을 모두 만족시킨다. 특히 '팍토스-루미나' 구조가 흥미로웠다. 특정 아이템의 효과를 한 명만 누리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일정 횟수 사용한 팍토스를 다른 캐릭터가 '루미나'를 소모해 공유할 수 있게 한 점은 혁신적이다. 이는 모든 캐릭터가 다채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유도하며, 시스템과 전투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훌륭한 게임 루프를 형성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3막 이전까지 플레이어의 데미지 상한선을 인위적으로 제한해 두었다는 것이다. 이는 전략적 최적화를 통해 강력한 화력을 뿜어내는 성취감을 저해하고, 게임이 정해둔 속도에 유저를 강제로 맞추게 한다는 인상을 준다.

과도한 데미지로 인해 유저의 경험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게임사의 장치라고 이해는 되지만, 게이머 입장에서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치며

서사적인 측면에서 몇몇 아쉬운 점이 눈에 띄긴 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클레르 옵스퀴르>는 압도적인 시각적 연출과 깊이 있는 전투 시스템을 갖춘 수작이다. 턴제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했던 제작진의 야심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